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녹화사업(비밀 공작) (문단 편집) == 부작용 == 부작용도 존재하였는데 전방 철책에 배치된 몇몇 강제입대자들은 군사정권의 탄압에 염증을 느끼고 [[월북]]하기도 하였다. 녹화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 [[조준희 일병 월북 사건|강제입영된 육군 병사가 아군을 여러 명 죽이고 월북한 사건]]도 있었으며 강제입영으로 내부의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원을 최전방에 보낸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도 눈엣가시인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로 끌고 갔지만 무조건 전방철책으로 보내지는 않았고 일단 입대가 결정되면 다른 신병들과 똑같이 뺑뺑이 돌려서 전국에 분산배치했다. 예를 들어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서 강제징집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정동영]]은 후방 향토사단이었던 [[제33보병사단]](현 [[제17보병사단]]) 본부대 [[행정병]] 보직을 받았다. 다만 각 부대 [[보안대]](오늘날의 [[기무부대]])가 이들을 집중관리했다고는 한다. 거치적거리는 운동권 대학생들을 가혹한 환경의 전방 전투부대에 배치해서 고통받게 한 뒤 프락치로 회유하는 게[* 일단 한 번이라도 프락치 짓을 하면 이후 운동권에 복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신군부에 협조적이거나 최소한 운동권을 탈퇴하게 된다.] 당시 [[신군부]]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방이라고 모두 편한 [[꿀보직]]도 아니고 오히려 전방철책보다 힘든 곳도 수두룩한데[* 예를 들어 후방의 기동예비부대는 장비와 시설이 좋은 대신 일반부대보다 고강도로 훈련시킨다.] 정권과 체제에 극도의 반감을 가진 인물들을 무조건 전방에 보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신군부의 인물들이 얼마나 군의 현실을 모르는 [[똥별]]들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냥 전방은 힘들고 후방은 편하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월북이나 총기사고 등의 위험성 등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최전방을 국가 수뇌부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으니[* 정상적인 국가라면 최전방 근무 환경이 열악하거나 개전 직후 다수가 죽고 다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해도 최소한 반대급부로 시설을 잘 갖춰 주고 대우도 잘 해 주는 것이 정상이다. 신군부는 이런 당연한 상식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민간인들보다 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집단이었다.] 다른 징병 대상자들도 녹화사업 대상자들에 대한 감정이 어떻건 당연히 가능하면 전방에 배치되지 않으려 들고 그게 불가능하면 군대를 빠지려는 [[병역비리]]가 횡행할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